나의 노가다 3
공무대리님은 나를 바라보며 나도 사년전에는 너와 같은 시절이 있었노라 하며 나의 신상을 캐묻고는 사무실 얘기를 해주었다.
"소장님은 나이가 젊음에도 불구하고 신뢰와 인정을 받으셔서 이런 대형현장 소장님을 하셔. 현채로 시작해서 여기까지 올라온 회사의 신화와 같은 존재지.
현장 직원은 아직까지 스물다섯명이고 정규직은 여덞명이야. 그 중 네명이 공채고.
공무팀장님이 젤 기수가 높은 차장님이시고 그 담이 나고.. 그리고 공사팀에 이제 막 대리 달은 애 있어. 너랑 공구가 달라서 아직 모를꺼야.
공채로 들어온만큼 쪽팔리지 않게 잘 해야 해!"
공사팀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셨다.
"공사팀장님 또한 유능한 분이셔. 옛날 동아건설 알지? 동아건설이 어려워지면서 경력으로 회사에 입사하셨는데 엄청 스마트 하니까 잘 모셔라.
현장은 두개 공구로 나뉘어져 있고 넌 박과장이랑 임기사 둘이서 같이 일공구를 담당한다 들었어.
박과장이랑 임기사 둘다 계약직인데 일 잘하고 유능한 친구들이니 많이 배워라"
궁금했던 것들을 말씀해주시니 너무 고마왔고 또 이렇게 챙겨주니 정말 반가왔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 흙막이 정리를 하는데 임기사가 쓱 다가왔다.
"김기사님 커피한잔 하실래요?"
임기사를 쫄래쫄래 따라 안전교육장으로 내려갔다.
생전 잘 마시지 않던 믹스커피를 두잔이나 마셔서 입에서 단내가 난다. 나중에는 협력사 사무실 들릴 때마다 물처럼 들이마시게 되는 커피지만 처음에는 잘 적응이 되지 않았다.
임기사는 개략적인 현장개요와 앞으로 내가 해야할 일 그리고 기본적인 업무 방침에 대해서 차근차근 설명했다.
자기는 경력 이제 삼년차고 전 현장에서 골조회사 공사 관리 하다가 박과장 눈에 띄어서 현채직으로 이 현장에서 근무한다 했다.
좀 삐쩍 말라서 호리호리한 타입의 임기사는 거무잡잡한 피부에 몸이 너무 말라서 그런지 근무복이 유달리 커보였다.
"박과장님은 엄청 일 잘하시고 스마트하세요. SKY 출신인데 집안이 어려워 중간에 학교를 그만두고 군대를 갔다오고 온갖 일을 다 해본 사람이에요. 성격이 불같으셔서 뭐 하나 지시한거는 되도록이면 꼭 하세요."
진심으로 너무 고마왔다. 약 한시간 걸쳐서 얘기를 나누고는 임기사는 공사팀장님 무전을 받고 밖으로 나갔고 나도 사무실 내 자리로 가서 흙막이 정리를 마저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때가되어 허겁지겁 밥을 먹고 오후가 되었다.
박과장이 다가와
"안전장구 챙겨서 따라와."
라며 성큼성큼 앞장선다. 후다닥 준비하고 내려가니 담배 한대를 피던 박과장은 나를 데리고 일층 감리실로 데려갔다.
"안녕하십니까?"
생전 웃을 것 같지 않던 박과장은 얼굴에 함박 웃음을 머금은 채 건축 표지판이 있던 자리로 향했다.
가는 중간 중간 나이 많아 보이는 사람들하고 인사를 하며 지나갔고 책상 세개가 나란히 배치되어있던 건축 표지판 밑에 섰다.
"부장님 차장님 이 친구가 어제 새로온 신입기사입니다. 김기사 인사 해."
"안녕하십니까! 김XX입니다."
"저랑 같이 일공구를 담당하게 되었구요 부장님 잘 부탁 드립니다. ㅎㅎ"
아마 일공구 담당 감리원인가보다. 약간 벗겨진 머리에 살집이 있으신 부장님이 반갑다며 악수를 건냈지만 웃음끼는 없었다.
진지하게 인사하고 뻠쭘하게 서 있는데 박과장은 십여분정도 일 얘기를 하다가 나를 다른 한 사람에게 데려간다.
'토목표지판이라...'
안경쓰고 나이 많아 보이는 어르신이 자리에 앉아계신다. 생글생글 웃던 박과장의 표정도 좀 차가와졌다.
"이사님 어제 새로운 친구입니다. 저랑 같이 일 할거고 앞으로 토목공정 담당할거에요."
이사란 분은 나를 천천히 살피더니 내게 물었다.
"토목과 출신이신가요?"
난 건축공학과를 졸업했다 말했고 그 말을 듣자마자 이사님은 박과장에서 신경질적으로 답했다.
"아니 이 큰 규모의 현장에 토목직원 하나 없어서 자꾸 건축기사를 붙이면 어떡해? 건축이 토목에 대해서 뭘 안다고, 건축은 건축만 하고 토목은 토목을 하고 이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땅파고 지구를 성형하는 일에 자꾸 건축이 한다고 그래?!"
"저희 토목 차장님 계시잖습니까?"
박과장은 차갑게 대답했고 토목 담당 이사는 비아냥조로 있으나 마나한 사람 말고 직접 일을 챙기고 안전하게 공사할 수 있는 실무자가 와야 자기가 발 뻗고 잠을 잘 수 있는거 아니냐 내가 요즘 불면증에 시달려서 잠을 잘 수가 없다는 등 하소연 반 비아냥 반 섞인 투정 아닌 투정을 하고 있었다.
박과장은 일단 팀장님 보고하고 토목직원 충원을 얘기해보리다 하고 마무리 한 후 다시 건축 감리원들을 향해 웃으며 인사를 하고 나갈 때도 한명씩 꾸벅 꾸벅 인사를 하고 나갔다.
토목이사가 말할 때 그 누구도 숨도 안쉬고 있는걸로 보아 파워가 있거나 아니면 남의것에는 신경 안쓰는 감리원들 특징인가보다 생각했었지만 나중에야 고집불통 외통으로 말이 안통하는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박과장은 다시 담배 한대를 암말없이 피더니 현장 펜스쪽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거기에는 회색 컨테이너 다섯개정도가 이단으로 쌓여있었고 이층 컨테이너로 올라갔다.
"이소장님!! 내가 어제 말한거 아직 안되어있데요? 복공판 추가된 부위는 CIP 빠져야 하는데 사일로를 아직 안옮겼데??
아 그리고 여기는 새로온 김기사. 앞으로 김기사가 다 할꺼여. 난 감리도 짜증나고 팀장도 떽떽거리고 공부나 해야겠어."
이소장님은 토목업체 소장님이시고 키작고 머리는 히끗히끗하고 눈을 습관적으로 빠르게 좌우로 번득였다.
아침에 커피를 두잔이나 마셨는데 또 믹스커피를 내민다. 입에 한모금 담그고는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박과장과 이소장님은 오랜시간 함께 한것처럼 웃으며 때론 반말 비슷하게 섞어가며 대화를 나눴고 일 얘기를 하는데 난 통 무슨 말을 하는지 감도 잡을 수가 없었다.
삼십여분 일 얘기 끝에 박과장이 일어선다.
"오후에 잠깐 사무실 오세요. 공정표 다시 짜야지. 텐 말고 공팔 두대가 더 낫지 않나? A2 구간은 벌써 암 나오더만. 갈께요 이따봐요."
박과장을 쫄래쫄래 따라 현장 경사로를 내려갔다.
직접 현장을 보니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저 밑에는 백호 네대정도가 바쁘게 상차 중이었고 한쪽에서는 어스앵커 장비가 귀청이 떨어질만큼 큰 소리를 내며 천공 중이었다.
현장 바닥에 내려오니 웅장한 크기의 띠장이 보였다. 아.. 저게 어스앵커 띠장이구나.
백호 한대가 H빔에 후크를 메달고 띠장 상단을 붙이기 위해서 작업 중이었고 작업팀은 군대에서 대민지원 나갔을 때 봤던 농부 아저씨들처럼 갓이 있는 안전모를 쓰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김반장임요 오늘 몇개 걸 수 있어요?"
삼십미터 떨어진 곳에서 어스앵커 장비 소리가 시끄럽게 열일을 하던터라 목청높여 물었고 레이방 썬글라스를 킨 반장님이랑 가까이서 얘기를 주고 받았다.
몇가지 작업지시를 하고는 박과장은 현장을 죽 둘러보다가 나에게 가자. 하고는 앞장섰다.
펜스주변으로 삥 둘러져있는 가설발판을 따라 걸으며 현장 사진도 찍고 한참을 말없이 백호 작업하는걸 지켜보더니 임기사를 무전으로 찾았다.
"임기사 송신."
한참을 찾았지만 임기사는 답이 없었고 박과장은 전화를 했다.
임기사는 좌표 따느라 무전기 채널을 다른데 두고 있었다고 했고 박과장은 알았다 하며 전화를 끊고 무전기 채널을 바꿨다.
무전으로 얘기하는데 군대 있을 때 무전 잡던 생각도 나고해서 들으려고 노렸했는데 통 안들리더라.
무전을 마치고 다시 펜스 통로를 지나 이공구로 넘어갔다. 이공구도 일공구처럼 큰 규모로 비슷한 숫자의 장비와 어스앵커 장비로 여전히 시끄러웠다.
한바퀴 삥 돌아 또다른 또다른 컨테이너 앞에 다달았고 그 안으로 쑥 들어갔다.
컨테이너 안에는 양수기와 각종 공구들 그리고 절반정도 침상이 설치되어있었고 한쪽에 앉아있던 검은 피부의 사람이 환영했다.
"아니고 박과장님이 왠일로 제 보금자리까지 오셨어?"
"김기사라고 새로왔어요. 인사해."
난 안녕하십니까! 라고 큰 소리로 말했고 검은 피부의 사람이 내 두손을 꼭 잡고는 허리를 공손하게 숙이며 말했다.
"아 새로운 기사님이시네. 김반장이올시다. 앞으로 잘 좀 부탁혀요."
김반장님은 커피한잔 타줄까 하며 의사를 물어봤지만 거절하기엔 이미 정수기 뜨거운 물을 받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한모금 하고 침상에 내려놓고는 박과장과 김반장님의 대화를 들었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담주에 태풍 소식이 있으니 양수기 점검도 하고 펜스 개구멍도 좀 막아달라는 부탁이었던걸로 기억한다.
김반장님은 아니 내가 지금 거시기 직영 두명에 관리팀장님이 시키신 일이 있는데 고거 마무리하려면 쪼까 시간이 부족한데 우짤쓰까 이러셨고 박과장은 현장알이 중요하지 뭐가 더 중요하냐며 따져물었고 둘이 티격태격 하다가 용역 신청 해볼테니 좀 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김반장님은 용역 안주면 난 못하요~~ 라고 닫히는 문에 얘기했고 난 서둘러 박과장을 따라 나오면서 문을 닫았다.
다시 사무실로 오니 현장 패트롤로 한시간 반이 지났다. 안전벨트를 풀고 물 한잔 마시고는 박과장을 따라 안전교육장으로 내려갔다.
종이와 펜을 들고는 공사팀 조직에 대해서 차분히 설명했다.
"팀장님은 전체 총괄하시고 내가 일공구 공구장을 하고 있어. 전체 인원은 팀장님 포함 여섯명이고 일공구는 먼저 착공해서 이공구보다는 일이 좀 더 진행됐어. 그래서 니가 일공구로 온거고.
이공구는 이과장이 공구장을 하고 채대리가 밑에 있지. 임기사가 빨빨거리며 부지런하니 임기사한테 많이 배워. 임기사랑 동갑이라했나..? 임기사가 너보다 한 삼년 먼저 일 시작한 선배니 고참이라 생각하고 부지런히 따라다니면서 배워라.
그리고 난 좀 성격이 급해서 두번 같은 질문 하는건 용서하지만 세번 같은 질문 했을 때부터는 바로 죽탱이 날아간다. 그러니 매사에 꼼꼼하게 기록하고 항상 도면은 들고 다니도록."
죽탱이란 말이 거슬려지만서도 왠지 믿음이 가고 든든하다.
"과장님 저.. 질문 하나만 해도 되겠습니까?"
"어 말해."
"음.. 아까 그.. 감리 사무실.. 맞죠? 거기 토목 담당하시던 분은 어떤 분이신가요?"
박과장은 한숨을 푹 쉬더니
"응 니가 앞으로 상대해야 할 사람. 내가 노가다 좀 있음 십년인데 그런 말 안통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는거 같어. 고집이 너무 쎄서 힘들다."
나를 보고 살짝 웃으며 얘기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잘 모르겠다.
"여기는 대형 주상복합이라.. 토공사가 약 일년 반정도 된다. 이제 반년 했으니 앞으로 일년은 토목 공정을 쭉 신경써야 하고."
"토목일이라면 토목 담당 직원이 아까 이사님이 말씀하신대로.. 와서 봐야 하는거 아닌가요?"
"김기사야 너 학교 다닐 때 안배웠어? 흙막이 굴착을 꼭 토목과 나와야만 하나? 글구 토목 차장님 계시잖아. 일 진행하는거야 같이 하면 되고. 왜? 건축과 나와서 땅파니까 싫어?"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했지만 사실 그 넓은 대지를 땅 파고 흙막이를 한다는 것이 좀 두려웠다.
"현장은 혼자 다니지 말고 오후부터는 임기사 따라다니거나 나 나갈 때 같이 나가자. 글구 너 환영식은 금요일에 있으니 그리 알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