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가다 10
그렇게 우리 사이는 회복될 수 없는 관계로 멀어져 갔고 서로의 갈등은 쉽게 풀리지 못했다.
일단 전화 자체를 안받고 문자를 보내도 묵묵무답이어서 처음에는 좀 삐져서 그런거겠거니 하고 말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안했는데! 가서 안히고 진짜 잠만 자고 왔는데!
현장에서는 차츰 암이 나오기 시작했고 공팔들은 쁘레카를 붐대에 달고 다다다다다!! 하고 소음이 심하게 났다.
어스앵커의 웨에에에엥~~~! 치익! 웨에에에엥!!! 하는 소리와 따다다다다다다 소리가 앙상블로 들리니 현장에 나가면 무척 시끄러워서 옆사람과 얼굴을 마주보고 얘기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이명이 생긴것마냥 정말 시끄러웠다.
당연히 주변 상가나 빌라들로부터의 민원이 접수가 되었고 어스앵커는 소리는 시끄럽지만 참을만한데 쁘레카는 진동이 동반되니 근처 오래된 구옥들의 담벼락과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공사 착공 전 인근 서베이를 통해 크랙 게이지를 붙여놨으나 생각외의 경암이 나오면서 크랙 갯수는 늘어갔고 막내인 나는 계측업체와 함께 가가호호 방문하여 사정을 설명하고 크랙게이지를 붙이고 기록하고 사과하는 민원 담당 업무도 주어졌다.
경암 지반에서는 발파하게끔 시공계획이 잡혀 있었고 곧 이어서 발파장비가 현장에 반입되었다.
화약반장은 키도 작고 온순하게 생긴 사림인데 일할 때의 카리스마는 그 누구보다도 넘쳤다.
천공기로 일정 간격을 두고 구멍을 뚫고 쏘세지마냥 생긴 비닐 장약을 그 구멍에 넣고 도화선을 연결 후 고무매트로 덮고 공팔 바가지로 고무매트가 출렁이지 않게 누른 후 발파!
치음에는 화약반장도 계획 상 정해져있는대로 쏘세지 세개를 넣고 발파를 했으나 정말 단단한 암이었기에 난감해했다.
공기에 쫒기던 화약반장은 쏘세지를 더 넣기 시작했으며 문제는 쏘세지를 추가할수록 진동과 소음은 갑절이 되는 듯 했다.
쿠쿵!!
현장 가설 사무실이 흔들릴 정도였으며 난 무엇보다 게이트 b 바로 옆에 위치한 허름한 가옥에 할아버지의 불같은 잔소리가 걱정되었다.
아니나다를까... 현장에 전화가 오고 관리팀 최대리는 날 부르더니 거기 미친 할아버지집에 잠깐 다녀오라 했다.
민원업무는 왜 건축이 담당하나 관리는 뭐하고..
할아버지는 보자마자 대뜸 쌍욕을 해가며 우리집을 무너뜨릴거냐면서 엄청 화를 내셨다.
한참을 욕을 먹고 규정대로는 하고 있는데 암이 너무 단단해서 진동이 전달된다. 좀 조심히 하겠노라 라고 계속 머리를 굽히며 사과하고 겨우 달래놓고선 게이트 b로 진입하는데 다시 쿵!! 소리가 나면서 소세지 비닐이 하늘위로 쏘아올려진다.
하.. 십오미터 밑에서 발파하는데도.
순간 내가 왜 썅 이러고 있어야 하나 화약반장에게 화가났다.
씩씩대며 가설계단을 내려가서 화약반장 앞에 섰다. 화약반장은 또다시 장약을 넣고 도화선을 연결 중이었다.
"반장님!! 도대체 장약을 얼만큼 넣는거요!!! 아주 주변 민원이 장난이 아닌데 규정대로 합시다!"
화약반장은 나를 보며 씽끗 웃고는
"김기사님 오늘따라 저기압이시네. 장악을 맞취넣으면 암이 안깨져요. 내가 저번에 설명해줬자나."
"검측요청서에 천공깊이와 장약 삽입기준이 있잖아요! 그거대로 해야 하는거 아닙니까. 아주 주변 난리도 아니에요!"
화약반장은 암말도 안하고 하던 일을 계속 했다.
"아 하지 말라니까 쫌!"
"내가 평소에 김기사 보고 우리 아들같기도 하고 해서 이쁘다 했는데 어째 말이 좀 짧네? 그리고 검측은 검측이지 내가 시간 내로 일 못 끝내면 김기사가 추가된 날짜만큼 인건비 쳉겨줄꺼야?
그게 아니라면 우리 좋게 좋게 갑시다. 김기사 고생하는건 아는데 나도 좀 먹고 살아야지.."
비키라고 하고선 다시 발파 준비를 한다.
난 씩씩대며 고무매트 위로 밟고 올라섰다.
"안된다고! 발파못해!"
화약반장은 눈이 뚱그래져서 달려오더만 날 거칠게 끌고 고무 매트 밖으로 내몰고는 멀리 밀어냈다.
"아니 ㅆㅂ 좋게 말하니 못 알아 쳐먹네! 매트 위가 얼마나 위험한데 거기를 쳐 기어올라가!!"
나도 씩씩대며
"아니 그러니까 규정대로 하자고! ㅆㅂ 검측요청서에 있는대로 발파해야할거 아냐!"
화약반장이 나에게 다가와 멱살을 잡고 이 미친새끼가 좋게 좋게 해줬더니 신마이라 그런지 개념이 없네 확 이걸!! 하면서 부르르 떨었고 주변에 있던 작업자들이 와서 우리 사이를 떼냈다.
그리곤 작업자 한명이 나를 멀찍이 밀며 아 쫌 그만하라면서 다시 돌아갔고 화약반장은 씩씩대며 도화선 연결을 마무리 하고 호루라기를 삐이이익! 불고는 버튼을 눌렀다.
쿵!!!!
막상 근처에 있으니 진동하고 소음은 크지 않다.
내가 이런 취급받으려고 이러고 있나 억울히기도 하고 박과장이었다면 어찌 도움을 요청해볼텐데 답답해서 한숨을 쉬며 하늘을 올려다 봤다.
흙막이 벽 가설통로에서 이과장 토목차장 그리고 토목업체 소장이 자기들끼리 얘기를 하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이 씨X!
저색히들은 내가 이렇게 당하는데 구경만 하고 있네!
눈에 뵈는 것도 없고 씩씩대며 그들이 구경하던 곳을 향해 빠른걸음으로 걸어갔다.
가 보니 이미 아무도 없었다. 씩씩대며 기세를 모아 협력업체 사무실로 갔다.
문을 벌컥 여니 안에는 담당 과장 혼자 사무실에 앉아 데스라 정리를 하고 있었다.
"과장님! 소장님 어디 안오셨어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몰러~~ 한다.
아이 씨 어딜간거야! 문을 쾅 닫고 나왔는데 다시 문이 열리면서 과장이 나온다.
"야! 어따대고 문을 쳐닫고 지X이야? 존만한 놈이 어디서!!"
뭐어???
둘이 씩씩대며 말싸움을 하면서 멱살을 잡는데 누가 보더니 와서 말린다.
채대리였다.
둘을 떼어놓고 과장은 안으로 들여보내고 나를 직영반장 컨테이너로 데려갔다.
씩씩대며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쭉 얘기하니 채대리가 말했다.
"음.. 그래 이해한다. 그래도 업체랑 욕하고 붙으면 안돼. 그럼 니가 지는거야. 노가다 생리가 좀 거칠어서 가끔 그런 충돌은 일어나지만 절대 작업팀 또는 작업자하고 그런일로 붙으면 나중에 너가 일하기 힘들어져."
"채대리님! 그럼 그럴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겁니까!!"
채대리는 가만히 있다가 말을 했다.
"소장님을 사무실로 불러서 경고와 주의를 주고 시정지시서를 날려야지. 문서적으로 근거를 남기고 공구장님께 보고를 해야지. 우선적으로는 너가 토목소장님께 말하는거보다는 공구장님이 처리하는게 맞고 토목 차장님께도 말씀드리고 진행함이 옮아."
"대리님! 이과장이랑 토목 차장이랑 같이 저 싸우는거 구경하고 있었다니까요!!"
".... 그래 니 심정 이해한다. 규정대로 하는게 옳지. 그래도 일단 이번건은 이과장님에게 말씀드리고 이과장님이 움직이는게 맞지 않을까 싶다."
다음주면 자기 간다고 저리 말한다.
얄미웠다.
좀 진정시키다가 사무실로 올라갔다.
이과장은 자리에 앉아서 아무렇지도 않게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과장님.. 아까 보셨겠지만... 발파팀이 장약을 좀 많이 넣고 발파하는 것 같습니다."
"응... 근데?"
!!!!
근데라니. 근데라니!
"검측요청서에는 천공깊이 삼점오메다에 장약 세개를 넣고 발파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근데 확인해보니 오미터가 넘게 첨공하고 장약은 다섯개에서 여섯개 쓰고 있더라구요."
"어 그거 내가 시켰어."
!!!
"네?"
"응 내가 시켰다고. 김기사. 무슨말인지는 알겠는데 기준대로 해서 공사진행 안되면 니가 책임질거도 아니잖아. 주변 민원이야 잠깐이고 돈으로 쳐바르면 되고. 뭐가 문제지?"
내 사수가 시켰다니 난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알겠다고 하고는 자리에 앉아서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이건 아닌거 같다.
토목차장에게 걸어갔다.
"차장님.. 아까 검측 후에 발파를 하는데 장약이 좀 많이 들어간 것 같습니다."
"응 김기사. 그래. 알았어. 내가 얘기하도록 할께."
내 얘기를 귓등으로 듣는구나.
풀죽은 모습으로 자리에 앉아 자꾸 아까전이 일이 떠올랐다.
화약반장의 말투와 원망섞인 눈, 그리고 나를 떠밀면서 째려보던 작업자.
검측하기 전 천공할 때 화약반장과 오손도손 암 위에 앉아서 이렇구나.. 저렇구나.. 배워가던 나의 모습. 그리고 건축기사 토목기사 안전기사 화약기사 등등 자격증 여섯개를 보여주며 자기도 너와 같은 시절이 있었노라 라고 말했던 화약반장의 유난히 하얀 이빨.
난 누군가. 그리고 또 여긴 어딘가.
그날 일과시간이 끝나고 저녁을 먹으면서 들이킨 소주는 유난히 썼다.
혼자 한병 가까이 먹고 얼떨떨한 상태로 현장을 들어가서 어스름이 내린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자친구는 여자친구대로.. 일은 일대로.. 되는게 하나도 없구나.
학교에 찾아오던 선배들의 모습은 자신감이 넘치고 그랬는데 지금의 나의 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그 날 이후로 나도 모르게 발파팀과 눈도 못 마주치겠고 스스로 위축되가는 것 같았고 토목업체 과장이랑도 사이가 먹먹해졌다.
난 다람쥐 챗바퀴 돌아가 듯 아침먹고 검측받고 오후에는 발파시간에 맞춰 머리를 조아리고 다녔고 발파가 끝날쯔음 온 몸이 탈진된 채 정신도 안드로메다로 가고 지쳐만갔다.
그러던 어느날,
다시 업체와 마찰이 붙게 되었다.
대부분의 굴착현장에서는 토질의 성질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간략한 site survey 근거로 암선을 기록하여 VO 청구를 한다. 풍화암까지는 대충 브레커로 문대면 부셔지는 편이고 굴착 성질에 따른 루베당 단가가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 다시 돌아간다면 이 업체를 개박살 내겠지만 나에게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혼자 고군분투 해야만 했던 나에게는 개념조차 없었다.
공무팀에서는 경암 노출 근거를 사진 찍어오라 시켰고 토목과장은 큰 돌 덩어리를 백호 바가지에 싣고 띠장 삼단쯔음에 놓고 사진을 찍자고 했다.
아니 왜 돌을 저 밑에서 가져와서 위에서 찍지?
토목과장은 그냥 아렇게 하는거고 자기들은 암이 나오면 일도 더 힘들고 하니 이렇게 보드판을 대고 근거사진을 찍어달랜다.
"아뇨 이건 아니죠!"
과장은 피식 웃으며 정 따지고 싶으면 이과장님에게 가서 따지고 빨리 사진 찍자고 한다.
난 못하겠다 다시 돌 원위치 시켜놓고 띠장 육단에서 암이 나왔으니 거기 놓고 찍자고 했다.
또다시 언성이 높아지고 나도 이제 악밖에 안남은지라 서로 쌍욕을 하며 주먹다짐 일보직전까지 갔고 백호기사가 나와서 말렸다.
"아휴 그만들 해요. 김기사님 완전 쌈닭이네!"
보드판을 집어던지고 사무실로 왔다.
씩씩대며 이과장에게 자초지종을 보고하니 심드렁하게 듣고 있던 이과장은 자기가 현장 나가본다고 하고 전화로 토목소장을 호출하고 나갔다.
저번의 사태와는 반대로 내가 안전통로 발판에서 내려다보니 이과장은 직접 보드판을 들고 띠장삼단 위치에서 서 있고 토목소장이 사진을 찍는다.
장소를 바꿔 여러번 사진을 찍더니 사무실로 냉큼 들어온다.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지만 아무말도 않고 있었다.
오후에 공무팀 김대리에게 가서 슬쩍 물어봤다.
"사진? 이건데?"
이과장의 배나오고 기름진 얼굴이 보드판을 들고 있다.
"대리님 이거 암 위치가 여기가 아니에요. 저거보다 좀 더 밑에 있는거 백호로 들고 올라온건데..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어요."
김대리는 그래? 하고는 말았다.
정말 되는 것도 없고 진절머리 난다.
아르켜 주는 사람도 없고 사방이 적이다.
박과장이라도 있으면 얘기할텐데 차마 공구가 달라서 얘기하기도 껄끄럽고.
채대리도 짐 싸가지고 나갔고..
인생에 회의가 들었다.
그만두고 그냥 설계회사나 갈까. 이제 삼개월 했는데 더 늦기전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