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가다 12
구청에서 현장으로 들이닥쳤다.
발파 소음과 진동이 너무 커서 집이 무너진다는 민원을 받고 나왔다고 했다.
나이많아 보이는 세 사람이 사무실로 들어왔고 소장님과 공사팀장님 그리고 안전팀장님은 입구에서 정중히 모시고 소장님실로 들어갔다.
곧이어 감리단장도 소장실로 들어갔다.
대충 눈치챈 이과장과 박과장은 발파 작업을 중단시키고 어스앵커도 그라우팅만 허용한 상태에서 대기했고 각 공구 토목 소장님들은 사무실로 불려와서 대기했다.
잠깐 담배를 피려고 사무실 밖으로 나갔는데 마치 느낌이 숲 한가운데 있는 기분이 들 정도로 언제 시끄러웠냐는 듯 현장은 조용했다.
삼십여분 후 공무원 세사람은 소장실로 나왔고 정중히 배웅했다.
그 중 한명이 남아 공사팀장을 비롯해서 다 모아놓고 다시한번 강조했다.
"우리도 민원이 들어오면 어쩔 수 없어요. 계속 이렇게 되면 공사중지 명령을 내릴 수 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피차 서로 피곤해지는 일이에요."
계측기록을 가져달라 얘기했고 나와 임기사는 부리나케 발파때마다 계측업체와 함께 기록했던 데이터 쉬트가 정리된 바인더를 보여줬다.
공무원은 한참을 보더니
"이건 데시벨하고 진동폯이 좀 범위를 벗어나네요."
하며 서류를 내밀었다.
사실 계측 장소는 정해져있지만 암묵적으로 소음과 진동이 작게 기록되게끔 합의한 상태인지라 처음 두번의 발파는 적정한 장약을 넣고 발파했었는데 공무원이 지적한 데이터 쉬트는 초기발파 기록임에도 예상치를 벗어나 있었다.
아.. 이날이구나.
이과장과 밤늦게까지 술먹고 주정하던 이과장을 어렵게 택시태워보낸 날.
그 담날 나도 힘들어 계측회사와 발파팀간의 코디를 못해 놓친 날.. (격일로 계측했었음)
내가 머리를 긁적이자 이과장은 나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김기사 이거 제대로 기록된거 맞아? 저번에 계측 장비 이상 있다고 해서 칼리브레이션 다시 하라고 했었는데 확인한거야?!"
"아.. 네...(윙 모지?)
"아.. 죄송합니다. 장비이상이 있어서 교정을 보냈는데 전달이 잘 안됐나봐요. 앞으로 이런 일이 없게끔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공무원은 우리 둘을 번갈아보더니 말했다.
"하... 사정은 알겠는데 주변에 빌라들이랑 낡은 건물들이 많아서 그래요. 좀 조심하고 왠만하면 대민 지원 활동도 하고 좀 그러셔요. 이런거 서류상으로 남기면 저도 좀 그러니 앞으로 이런 일 없게 하시구요."
그렇게 이과장의 재치로 위기는 넘어갔고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신신당부 하고는 현장 사무실을 나섰다.
"과장님 저분은 몇급인가요?"
공무원을 현장 게이트까지 마중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과장에게 물었다.
"응 팔급."
잉? 생긴건 엄청 나이 많아보였는데 팔급밖에 안되냐고 물었다.
"짜샤. 기술직 공무원들은 원래 그래 임마. 아까 대빵으로 왔던 사람이 육급이야. 주사."
엇... 그제서야 채대리가 높아보였다. 채대리는 저 사람보다 높은 칠급 아닌가!!!
나 일학년때만 해도 공무원 준비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한때 드라마나 그런 어떤 요상한 열풍을 가지고 건축과가 입결 일등을 도맡아 할 때였기도 했고 정말이지 그 때는 의예과보다 건축과가 더 높았다... 는 뻥이고 비등비등했다.
그래서 다들 로트링 스테들러를 손에 쥐고 나도 언젠가는 르꼬르뷔제 미스반데로에 프랭크로이드 라이트 같은 세계적인 거장이 되겠노라 A0에 선긋기를 삐뚤빠뚤하게 그려댔었다.
물론 이 중에 절반은 이학년 마칠 쯤 자기 손이 똥손임을 깨닫고 공학계열로 이탈했고 나머지 절반은 설계란것이 마냥 그림만 잘 그려서 되는게 아닌 또다른 특별한 능력 즉 영감이라던가 집이 잘살아 끊임없이 해외답사를 다녀 보는 눈이 높아진 경우라던지 아니면 건축잡지를 헤질때가지 보고 연습해서 카피 레이스트를 잘 하던가 하는 뭐 그런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제대 후 또는 삼학년쯤 건설회사나 구조 설비 등등으로 진로를 바꿔 이탈했다.
물론 그 특별한 능력에는 말빨도 포함됐다. 교수의 크리틱을 말빨로 버티고 없는 사실도 있다고 뻥도 치고 하면서.
암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 준비하는 사람들은 정말 드물었다. 지금은 광풍이지만.
그 날 이후로 발파는 정량으로 진행됐고 계측팀과 좀 소리 안나게 그리고 진동 기록이 덜 되게끔 짱구를 굴렸다.
하지만 워낙 암이 단단하여 이대로 가다간 공기고 뭐고 다 물거품이 될 여지가 있었고 활암기도 들여왔다.
활암기를 처음 본 나는 엄청 기대했지만 그 효율은 생각했던 것 이하였다. 발파보다 다섯배정도는 속도가 느려보였고 당시 이과장과 짝짜꿍을 맞추던 나도 조급해졌다.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지..
결국 감리 검측과는 별도로 발파는 예전강도대로 진행키로 했고 내가 더 바빠지는 방법을 택했다.
그 때부터 주변 동네를 미친듯이 다녔다.
마치 국회의원마냥 다니며 집집마다 인사하고 안사먹던 까스 활명수도 약국에서 매일 먹었다.
아무래도 동네 소문은 노약자들이 많은 동네 특성상 약국을 통해서 이뤄질거다라고 판단했고 약사 아저씨와 넉살좋게 대화를 이어갔다.
그리고 계측하러 갈 때마다 항상 큰 소리로 인사하며 안부를 물었고 집에 있는 애들 이름을 물어 기록하고 기억한 후 다음 방문할 때는 손에 뭐라도 들고가서 애들 손에 쥐어줬다.
동네 아줌마들에게는 최대한 슬픈 표정으로 하.. 참 쉽지 않네요... 저도 말단이라 면목없습니다. 제가 담당하는데 이게 관리하기 어렵네요.. 하면서 동정표를 얻어갔고 동네 할아버지들 장기 두는 곳에서 한참을 서서 같이 훈수를 두며 철지난 수박 한통을 사서 대접하기도 했다.
그냥.. 이 상황을 빨리 해결하고 싶었고 내 개인돈이 들던 어쨌던 내 담당이라는 생각으로 미친듯이 쏘다녔다.
효과는 어마어마했다.
약 삼주정도 그러고 다니니 온 동네 사람들을 알게됐고 지나가면서 눈만 마주쳐도 인사했고 웃다보니 동네에서는 인사 잘하는 불쌍한 청년 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잘 대해줬다.
심지어 그 미친 할아버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할아버지도 또한 나의 끈질긴 노력끝에 하루종일 나만 기다리는 사람으로 변했다.
할아버지는 고물을 줏어 생계를 유지하시고 할머니는 병약해 늘 누워계셨다.
육이오를 학도병으로 참전해서 나라를 지켰고 베트남도 다녀오셨단다. 뻥인지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경험담이 바뀌는 것으로 보니 어느정도 뻥이 가미되어 있었다.
찾아가면 기다렸다는 듯이 툇마루에 앉아 막걸리와 김치를 내오곤 옛날 얘기에 푹 빠지시고는 그렇게 한시간 가량 나를 붙잡으셨다.
내가 갈 시간이 됐다고 일어설 쯤이면 섭섭한 듯이 큰 눈을 꿈뻑이시며
"내일도 오는가?"
라고 항상 물으셨다.
이러한 나의 노력?으로 민원은 정말 극소수 돈을 바라는 사람들 빼고는 없어지게 됐고 이과장이 이런 날 대신해서 검측을 받고 다녔다.
사실 이과장이 검측을 받고 해서 진도가 더 빠르게 나간건 안비밀이다. 걷기를 싫어해서 그렇지 현장 나가면 조목조목 따져묻고 조졌다.
토목 과장 나부랭이는 구석에서 보드판을 잡고 있고 토목업체 소장님에게 잔소리를 해가며 일을 시키니 작업팀 또한 긴장에 긴장을 하며 더 열심히 하드라..
이 때 주변을 돌아보고 사람들하고 교류하는게 난 좋았다. 과를 잘못 선택했나..
관리팀장님은 나만보면 먹고싶은거 없냐 물어보셨고 항상 쌩뚱맞고 틱틱대던 관리 이대리도 날 사람 취급해주었다.
그래.. 이게 일이구나.
안되는건 되게끔 하는 이 맛에 재미가 들렸고 어느새 이과장은 기성 사정권을 나에게 넘겼다.
이과장은 여전히 나에게 야단치고 가끔 폭언을 했지만 난 예전 채대리처럼 뻗뻗하게 서서 무표정으로 있는게 아니라 그 동안 동네사람들과의 수많은 시행착오로 단련된 나는 각 여건에 맞는 페르소나를 쓰고 이과장의 잔소리를 줄여갔다. 때로는 웃으며 때로는 심각하게 서 있으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있을 때는 오늘 저녁 두루치기를 해달래야지.. 라는 생각을 곧 잘 하곤 했던 것 같다.
토목공사가 어느정도 진행되고 골조업체 선정으로 한참 바빴다. 공구 막내인 나는 현장 일도 챙기고 민원일도 하느라 몸이 두개여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다녔고 일이 재밌었다.
이과장은 현설과 미팅으로 바빴고 인원배치계획 상 새로운 직원들이 투입될 때가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찬 바람이 당연시되고 낙엽마저 거리에서 자취를 감출 때 쯤 사무실에 앙칼지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안녕하십니까!"라는 큰 소리가 들렸다.
어!?? 신입이다!! 여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