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초등학생과의 사랑 이야기.ssul(8)
오늘은 2014년 12월 24일 수요일.
크리스마스 이브날입니다.
따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매일 아침 요란하게 단잠을 깨우는 알람 소리가
오늘따라 청아하게 들리는 이유는
오늘은 다운이와 단둘이 롯데월드로 놀러가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전날 들뜬 마음으로 일찍 일어나 준비해야지하는 생각으로
약속시간 2시간 전에 이미 알람을 맞춰놓았지만
핸드폰을 보니 이미 저보다 일찍 일어난 다운이에게 문자가 와 있었습니다.
[선생님 일어났어요???? 9시까지니깐 늦지마요!]
나도 모르게 새어나오는 미소와 함께 답장문자를 보냅니다
[너나 늦지마!]
다운이네 학교 가을 운동회 이후,
한층 더 사이가 가까워진 우리는
과외 시간 외에도 학교 앞에서 만나 단둘이 마트나 까페를 가고,
다운이네 어머니께서 늦게 오시는 날에는
과외를 끝나고 잠깐 가까운 공원으로 산책을 가는 등,
누가 봐도 연인같은 관계를 맺어갔습니다.
그러던 얼마전 다운이의 뜬금없는 한마디,
"선생님~!!!! 크리스마스 이브때 우리 롯데월드 가요!!"
원래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하는 제 성격으론
과외수업이 잡혀있던 오늘 어디를 놀러가는 것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지만
다운이네 학교가 마침 겨울 방학이 시작됐고
또 오늘은 다운이네 부모님과 태현이 모두 밤 늦게 돌아오셔서
다운이가 이브날 혼자 늦게까지 있어야 한다는 게 마음에 걸리는 것도 있었습니다만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어쩌면 오늘처럼 이렇게 다운이와 단둘이 하루 종일 데이트 할 수 있는 것이
또다시 없을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수도 있겠다 싶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준비를 다하고 시간을 보니 아직 20분이나 남았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가서
다운이를 볼 마음에 저는 신발장 앞에서 한번 더 거울을 보며 옷차림을 확인한 뒤
서둘러 집을 나왔습니다.
밖에 나와보니 정말 놀러가기 딱 좋은 너무 춥지 않은 화창한 날씨였습니다.
그렇게 다운이네까지 걸어가는데 그 발걸음이 어찌나 가볍고 셀레는지
다운이와 보낼 시간들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되더군요
길거리에 세워진 차들의 거울로 비춰진 제 모습을 보며,
수도 없이 옷차림을 확인하며 걸어오니
어느새 다운이외 만나기로 한 다운이집 아파트 앞 벤치에 도착했습니다.
아직 다운이는 내려오지 않았더라구요
[선생님은 도착했다~^^ 얼렁 준비하고 내려와]
다운이에게 도착했다는 문자를 보낸 뒤 다운이를 기다리며
어제 밤까지 다운이와 주고 받은 문자들을 다시 읽어보며 싱글벙글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오더라구요..
그런데 전화한 사람은 다운이가 아니라 제 친구녀석의 전화였습니다.
"여보세요? 어 왜?"
"야 너 오늘 저녁에 모해?"
"왜?"
"저녁에 과 애들이랑 모여서 술 먹자고 올꺼지? 야 소연이랑 유라도 온데 대박이지?"
한소연, 신유라..
우리 과에서 미모가 뛰어나 남자들에게 인기 많은 여자 후배들이었습니다.
"저녁 7시까지 용산역으로.."
"미안 나 오늘 약속있어"
"뭐? 진짜? 야 너 혹시 여자 만나냐?"
그순간 뭔가 어색한 단어...
여자...
다운이가 여자...
다운이가 내 여자친구... 내 애인...
뭔가 어색하고 민망한...
하지만... 늘 마음속으로 나도 모르게 바라고 바래왔던 그 단어.
"너 여자 생겼지? 맞지? 이게 요즘 계속 핸폰만 보고 싱글벙글 하더니..
누구야? 혹시 우리 학교애냐??"
뭔가 제 입에서 대답하려는 순간 갑자기 제 등을 치며
"선생님!!!!!!!!!!!!!!!!!"
다운이가 어느새 내려와 있었습니다.
"어? 머야? 여자 목소리?"
우렁찬 다운이 목소리에 그만 다운이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까지 들렸나 봅니다
"어? 선생님 누구랑 통화해요? 누구야? 누~구~세~여?
제 핸드폰에 대고 장난치는 다운이에게 저는 급하게 쉿쉿 손짓했습니다.
"야 선생님이라니? 누구야? 왜케 목소리가 어려"
저는 급하게 "아 암튼 나 오늘 못갈꺼 같애 미안 끊을께"하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제 말을 들은 다운이는
"에이~~ 모야 선생님 오늘 약속 있었어요?"
뭔가 미안해하는 표정입니다.
"어? 아냐아냐 친구가 갑자기 오늘 만나자고 하길래"
"그래서요~?"
고개를 살짝 기우뚱하며
토끼처럼 동그랗고 빨려들꺼 같은 이쁜 눈으로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물어보는 다운이.
평상시 자주 하는 반묶음 머리가 아닌 바람에 하늘하늘 거리는 긴생머리에,
위엔 하얀 줄무늬가 있는 검정 난방 위에 회색 니트를 입고,
밑에는 흰 스키니진과,
늘 신는 검정스니커즈를 신고 온
오늘의 다운이는 그 어떤 날보다 더 사랑스럽고 귀여웠습니다.
저도 모르게 다운이의 뽀얀 양볼을 양손으로 꾸욱 누르며
"물론~ 오늘 너무너무 중요한 약속있다고 절대로 안된다고 했지~^^"
그 말을 듣고 제 두 손에 양볼이 눌린 다운이는 눈웃음 짓는
"히~" 오늘따라 왜 이렇게 다운이가 이쁘고 사랑스러울까요?
"그럼 갈까?"
저는 다운이를 향해 제 손을 내밀었습니다.
다운이는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제가 뻗은 그 손을 냉큼 잡으며 "꼬~우!!!"
다운이와 그렇게 손잡고 버스를 타고 지하철역까지 가는 내내도
지하철을 기다리는 내내도 저희의 웃음은 그칠줄 몰랐습니다.
지하철에 평소 같으면 수요일 아침 때에는 1호선 지하철에 사람이 많지 않을텐데..
크리스마스 이브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꽤 사람이 많아서 앉을 자리가 없더라구요
"에이~ 자리가 없네~" 다운이는 아쉬운 듯 지하철 봉을 잡았습니다.
저는 그런 다운이가 귀여워 다운이 머리를 쓰담으며
"왜~ 다리 아퍼?" 물어보니깐
"아뇨! 선생님은 앉아야 되잖아요?"
"나? 왜?"
"연세가 있으시니깐.."
"야ㅡㅡ"
비록 자리가 없어 서서 갔지만 우리에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너무 크게 웃다가 노인 어른들의 눈총을 받고 재빨리 숨 죽이며 웃음 참기도 했고.
다운이가 지하철 안내음성 소리를 성대모사하는 모습에 배잡고 웃기도 하며
제로 게임으로 승부욕에 불타 서로의 이마의 딱밤 불주사를 놔주기도 하고
지하철 문에 기대어 서로 다정하게 셀카도 찍을 동안
어느새 우리가 탄 지하철은 잠실역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꽤나 붐비더군요
입장전 입구 앞에서 한번 더 다운이와 같이 사진을 찍은 뒤
우리는 마침내 자유이용권을 끊고 롯데월드에 입성하였습니다.
눈빛이 한층 더 초롱초롱해진 다운이.
"뭐 부터 탈래? 우선 회전목.."
"당연히 자유로드롭이요"
"뭐?"
아...
오기전에는 미처 생각도 못했는데..
막상 와보니 두가지 문제가 있더라구요
하나는 제가 그렇게 놀이기구를 잘 타는 사람이 아니였던 것과
또 하나는 저와 반대로 다운이는 놀이기구를 너무 잘 탄다는 점.
초등학생이니 기껏해여 회전목마, 범버카, 후룸나이드 정도 타겠지 생각하고 왔는데..
자유로드롭이라니...
심란해하는 제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140cm 이하는 이용할 수 없다는 키 제한"이었습니다.
그래 혹시 어쩌면.. 하고 다운이를 다시 보는데...
하.. 그냥 눈으로 봐도 다운이는 150이 훌쩍 넘어보였습니다.
그 동안 길고 늘씬하고 예뻤던 다운이의 다리가 왜 그 순간 만큼은 왜케 원망스럽던지
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치 않았죠
"다운아 이거 자유로드롭 140cm이하는 못 탄데 키 재봐야 할 거 같은데"
"아놔ㅡㅡ 이 선생님 날 뭘로 보고 저 153이거든요~~~?"
하.. 그래 다 부질없는 짓이었습니다.
그래..
이현성.. 까짓꺼 탄다고 죽는 거 아니잖아
학창시절때도 친구들이랑 와서 타본적 있고...
근데 오늘따라 왜 그렇게 자유로드롭이 높이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는지..
꽤 긴 대기줄에 서서
저는 비명소리와 함께 눈깜짝할 사이에
하늘에서 미친듯이 하강하는 자유로드롭의 위엄을 넋 놓고 바라보았습니다.
"우와~ 재밌겠다~~~~~~~><"
제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다운이는 그저 자유로드롭 탈 생각에 들떠 있었습니다.
놀이기구 따위에 겁 먹는 찌질한 모습을 다운이에게 절대 보여줄 수 없노라
다짐하며 속으로 안 무섭다 안 무섭다 무한 최면을 걸고 있는 사이
어느새 저희 차례가 왔더라구요
의자에 앉아 안전바를 내리는 데...
왜 제 처지가 죽음을 눈 앞에 둔 사형수 같아 보이는지....
목이 타고 식은땀이 주륵주륵 흐르더라구요
다운이가 옆에서 막 신나서 뭘 애기하는데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아직 마음에 준비가 다 안되었는데 이놈의 기계는 매정하게
저를 공중으로 띄워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발이 지면에서 멀어지면서 제 심장은 점점 더 콩알만해졌습니다.
"우와~~~~ 사람 완전 쪼그만해~~"
아니 도대체 무슨 여자애가 저렇게 겁이 없는지..
저는 밑을 내려다 볼 엄두조차 안나
눈 꽉 감고 심장을 부여잡고 있는데
다운이는 지상에서 내려다보는 광경에 감탄하고 있더라구요.
"선생님!!!"
언제 떨어질지 몰라 조마조마하며 눈을 감고 있는데 저를 다운이가 부르는겁니다.
"선생님!!! 밑에 봐봐요 밑에 사람들 완전 작아요"
저는 최대한 안 무서운 척 자연스럽게 "어.. 정말 그러...러러어어어어어억으아아아아악"
이 망할 기계가 대답하던 도중 떨어뜨리더라구요
정말 공중에서 땅까지 하강하는데 딱 3초밖에 안걸렸지만.
저는 그 3초 동안 미친듯이 비명을 지르며 안전바가 부서질 정도로 부여잡았습니다.
발이 땅에 닿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이 쉬어지더라구요..
"우와~ 대~ 박 완전 재밌어~~~ 선생님 완전 재밌죠?" 완전 신난 다운이
지 선생이 죽다 살아났는데, 다리에 힘이 풀릴 정도인데 이걸 아는지 모르는지
이미 자유로드롭으로 흥분한 다운이는 제 손을 붙잡고
옆을 가리키며 "선생님 이번엔 스윙타러 가요!"
다운이의 손가락이 가르키는 그 곳엔
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무지막지한 굉음과 수많은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함께
무섭게 돌진하여 하늘 높이 솟구치는 자유로스윙
아...
산넘어 산이구나.. 하하하...
하지만 제겐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이미 신날대로 신난 다운이는 제 의사는 듣지도 않고 제게 팔짱을 끼고 무작정
자유로스윙 대기줄로 진격해 버리는 겁니다..
넋나간 표정으로 40여분을 대기줄에 서서 바라본 뒤에야
다운이와 저는 그 기구를 탈 수 있었고
10분 후 저는 입에 거품 물기 직전에서야 겨우 스윙에서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자 다음은 아트란티스 타러.."
"설다운!!!!!!!!!!!!!!!!!!!!!"
아트란티스고 나발이고 저는 더이상 못 참고 소리쳤습니다.
"네?"
"밥... 밥 먹고 타자.."
워낙 인기많던 놀이기구여서 그런지
겨우 두개 탔는데 벌써 점심시간을 훌쩍 넘어버린 오후 2시 15분이더라구요.
뭐.. 밥을 안 먹고 먼저 탄게 어떤 의미론 다행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다행히 다운이도 배가 고팠는지
"뭐 먹을꺼예요~~??"하고 반기는 눈치더군요
일단 이 지옥같은 매직 아일랜드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일단 무작정
다운이 손을 붙잡고 뒤도 안 돌아보고 다리를 건너 왔습니다.
일단 건너는 왔는데, 막상 식당을 고르려고 하니 종류도 많고 가격도 천지차이더군요
"선생님 뭐 먹을꺼예요 우리~~??"
"음.. 글쎄 뭐가 어디 가서 먹을까?" 막 고민하는데
다운이가 먼저 "선생님 저기 봐요! 저~~기! 사람들 완전 많은데요"
라팔로마? 라는 식당이었는데 진짜 다른 식당에 비해 유독 붐비더라구요
"오 돈까스랑 우동도 있네~~~!!!"
다운이는 맘에 들었는지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 있더군요
"그럼 여기서 먹을까?"
"콜!!!"
메뉴를 시킨 뒤 창가쪽 자리에 앉으니 그제서야 좀 긴장이 풀리더군요
다운이는 애교를 부리듯 테이블에 두 팔꿈치를 대고
깍지 낀 양손위에 자신의 얼굴을 얹혀놓고
콧노래를 부르며 제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라구요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지만 오늘 매몰차게 끌고다니며
놀이기구를 태웠던 다운이가 얄미워
"뭐가 그렇게 좋냐?"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습니다.
다운이는 이래도 안 넘어올꺼냐는 듯이 백만불짜리 눈웃음을 발사하더군요
"치~" 애써 참으려고 해도 저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미소
놀이기구에 혼이 빠져 다운이와의 데이트를 만끽하진 못한 아쉬움이..
한방에 날라가더군요.
다운이와 이런 저런 애기를 나누는 동안 어느새 음식이 나오더라구요
오전부터 쫄쫄 굶었던 저희는 "맛있다, 진짜 맛있다"를 남발하며
정말 게눈 감추듯 정신없이 먹었습니다.
"으아아~~ 배 터질꺼 같다"
한참을 정신없이 먹던 다운이는 더이상 못 먹겠다는 듯이 먼저 젓가락을 내려놓았습니다.
저는 남은 김치볶음밥을 처리하기 위해 수저로 모으는 데
다운이가 제 폰을 집어선
"혼자서 세 그릇을 뚝딱하시는 우리 돼지 선생님~ 김치~~"
"...ㅡㅡ야 이"
찰칵~
"꺄하하하하하하하 선생님 표정 봐 완전 못생겼어 ㅋㅋㅋㅋㅋㅋㅋ"
"설다운씨 그러다 맞으면 안 아프지?"
머쓱한 듯 다운이는 웃음을 참으며 제 핸드폰을 제 앞으로 내려놓았습니다.
"근데 선생님 핸폰 충전 안했어요? 왜케 배터리가 없어요?"
켜보니 7%로 밖에 안 남아있더라구요
"어제 충전기가 잘못 꼽았는지 제대로 충전을 못했어"
뭐 그땐 다운이도, 저도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엄청난 후폭풍을 몰게 만든 원인 중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저와 다운이는 입가심으로 저는 아메라카노를, 다운이는 솜사탕을 샀습니다.
다운이는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제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선생님 커피 좋아해요?"
"응~ 하루에 꼭 2-3잔은 마셔"
"흐~음" 그러더니
"나~나~ 나도 마셔볼래요 줘봐요"
"야 무슨 어린애가 벌써부터 커피야 안돼"
"아아아아아아아 조금만 마셔볼께요 조! 금! 만!"
다운이가 제 손을 흔들며 떼를 쓰는 바람에 커피를 쏟을까봐
저는 어쩔수 없이 "진짜 쪼금만 마셔야돼!" 하며 커피를 건네주었습니다.
앵두같은 작은 입술로 호로록 호로록 마신 다운이
갑자기 눈썹을 찌푸르고 혀를 내두르며
"으웨에에엑 써!!! 완전 써!! 퉷퉷 으아악"
"푸하하하하하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어찌나 귀여우던지 저도 모르게 배를 잡고 웃어버렸습니다.
다운이는 죽겠다는 듯이 저를 째려보며
"뭐가 웃겨요 남은 써서 죽겠구만!!!!!ㅠㅠ 퉤!퉤! 아 이런걸 왜 마셔요!! 완전 독약이야 독약"
"아~ 너무 웃기다, 야 사진 쫌 찍어보게 한모금만 더 마셔볼래?"
"됐거든요 이 아저씨야!!!"
다운이는 손사래를 치며 얼른 솜사탕 한 뭉탱이를 뜯어서 냉큼 입에 쑤셔 넣더라구요
그렇게 다운이와 달콤한 시간도 잠시,
이제 후반전 시작인건가요..?
다운이는 오전에 미처 못탄 한을 푸듯이 반쯤 넋나간 저를 끌고
아트란티스, 후렌치레볼루션, 자이안트 루프, 후름라이드까지....
정말 어쩌면 하나같이 버라이어티한것들만 좋아하는지...
하나하나 탈때마다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심장을 미친듯이 조여버리게 했지만.
끝까지 다운이 앞에서 애써 미소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죠.
정말 나중엔 헛구역질까지 날 뻔 하더군요..
그렇게 후룸나이드까지 타고나니 어느새 저녁 6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점심을 워낙 잘 먹은 탓에 저녁은 그냥 간단하게 먹자고 서로 마음이 통한 우리는
핫도그 하나만 사서 서로 반씩 나눠먹기로 하였죠
그렇게 핫도그 하나를 사서 거리에 있는 벤치에 앉아 나눠먹었습니다.
"이제 뭐 타고 싶어?"
하.. 또 어떤 놀이기구 이름이 다운이 입에서 나올까 두려워하며 물어보는데
핫도그를 오물오물 씹어먹던 다운이가 잠시 생각하더니
"그러고보니 오늘 하루종일 내가 타고 싶은것만 탔네..."
"알긴 아는구나"
"알았어요 이번엔 선생님이 타고 싶은거 타요!"
"어머 왠일이래? 이제 갈때 다 되니깐 철드는구나?"
다운이는 제 앞에 쪼그려 앉아 제 무릎위에 얼굴을 대고 저를 올려다보며
"뭐. 타. 고. 싶. 으. 셔. 요?"
뭘 타면 좀 괜찮을까 하며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데 제 눈앞에 무언가가 보였습니다.
"오케이! 저거!"
저는 한 놀이기구를 가르켰습니다.
"어? 관람차요?"
다운이는 두손으로 제 두손을 잡고 일으키며
"자~ 자~ 정해졌으면 후딱 가십시다~~~"
다행히 그 시간에 관참차 대기줄 인원이 적더라구요
그렇게 대기줄에 서서 기다리며 다운이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갑자기 "어? 문자왔네" 다운이는 주머니에서 자기 핸드폰을 꺼내어 열어보았습니다.
"누가 보냈을까~?" 다운이는 문자를 확인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순간 어두워지는 다운이의 표정.
뭐지?
그러더니 답장도 안하고 얼른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이야기를 이어가는 겁니다.
분명 표정이 안좋았었는데.. 그냥 어두워서 눈을 찌푸린건가?
어느새 저희 차례가 되어 관참차에 올랐습니다.
"히히 우리 무거워서 이거 올라가다 중간에 떨어지는거 아니죠?"
"야.. 너는 무슨 말을 해도"
그렇게 우리가 탄 관참차는 천천히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굳이 다른 많이 놀이기구 중에서 관람차를 선택한 이유는
물론 위험하지 않고 만만한 놀이기구를 선택하는 것도 있었지만
그것과는 비교도 안될 중요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만큼은 그 어떤 누구도 방해받지 않는
단 둘만의 공간, 단 둘만의 시간...
지금 다운이와 저는 다른 어떤 곳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바람 결에 긴생머리가 살랑살랑 흔들리는 너무 이쁜 다운이
왜 그렇게 이쁜거니....
왜 그렇게 깨끗한거니....
그런 다운이를 보자 저는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무언가가 솓구쳐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어.. 이러면 안되는데
말하면 안돼는데..
늘 다운이를 보며 꺼내고 싶었지만 늘 마음 속 깊이 감춰두었던 한마디.
안돼..
언제가 될지 몰라도 언젠가는 꼭 전해주고 싶었던 내 마음 속 한마디.
말하면 안돼..
하지만 그것이 절대로.. 절대로 허락될 수 없는 그 한마디.
안돼 안된다고 제발...
지금 그 한마디가, 수없이 억누르고, 감춰왔던 그 한마디가
내 입술에서 조심스럽게 나오려 합니다.
"다운아...."
"네?"
그리고 동시에 울리는 다운이의 전화벨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