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휴학 반수 썰(아주대갤)
익명_MTEyLjI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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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5 11:17
올 수능이 끝나고 글을 쓸려고 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까먹고, 11월쯤엔 완전히 까먹을 것 같아서 글을 미리쓴다.
원래 올 2월쯤 인증이랑 함께 '무휴학 반수 공대생 편' 이란 글을 썼지만 누군가 신고를 해서 지운것 같다.
다시 한번 쓰지만 반수를 하는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길....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때는 2011년 11월 10일 2012 수능.
수학 찍은 것만 잘 받으면 2등급 받을 것 같았다. 하지만.. 찍은게 맞을리 없었다.
점수가 망했다. 341 11 받았다. 영어와 과탐은 만점이었다.
너무 안타까웠다.
내가 생각하던 곳은 참으로 갈 수 없었고 오르비에서는 집앞 아주대 갈 수 있을까라고 물었지만
이 점수로 아주대도 못 갈것이라 겁을 주었다.
아주대 전자공학과를 질러 보자 라고 마음을 먹고 질렀다. 하지만 결과는 최초합....
경희대 전자전파, 아주대 전자, 아주대 기계를 다 붙고 아주대 전자를 선택했다. 기계를 갈껄 약간 후회가 됐다. GM 이랑 계약한줄 모르고...
수리 4등급이라도 영어를 잘봐서 합격한 것 같다. 어쨌든 행복했다. 대학도 못 갈 줄 알았는데
그래도 공대라면 알아주는 아주대에 합격했으니... 근데 수학이 너무 아쉬웠다.
언어는 원래 미끄러졌지만 수리는 항상 3~4를 진동이라 수학만 잘하면 더 좋은 곳을 갈수 있었다.
수학을 엄청나게 해보자 독하게 생각을 하고 1월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오티를 가고 게임을 하고 나락으로 빠지며 그냥 아주대 다녀야 겠다 맘먹었다.
오티를 저기 어디 강원도 어디를 갔는데 바닷가로 기억을 한다. 공대 전체가 아마 다같이 갔을 것이다.
12학번이면 다들 기억할 것이다. 거기서 무슨 티도 줬는데 집에서 입었다. 그리고 지금은 오그라들지만 방돌이라고
동아리 소학회들이 방을 돌면서 술먹는 이상한 관습적인것을 했다. ㅎㅎ 그래도 그때까진 즐거웠다.
3월이 되어서 나름 동아리 2개도 들고 축구 소학회도 들면서 신나게 학교 생활을 했다.
근데 교재를 사러 갔을때, 학교 앞 교문서적에서 수능특강이란 책을 보게 된 순간.. 수학 4등급이 너무 아까웠다...
그리고 자존심이 상했다. 4등급이라니...
대학을 바꾸는건 둘째치고 4등급이라는 것이 용서가 안된다. 1년 내내 했는데 4등급이란 것이...
다시 한번 도전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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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부터 수학만 팠다. 계속 수학만 했다. 중도에서도 율람실에서도 다람실에서도.
물론 1학기때는 실험과목 과제도 많아서 꽤나 힘들었다. 그래도 틈틈이 공부를 했다. 많이 했지만 책 2권정도 밖에 못했다. 그것도 수학책만...
우리 집 형편이 매우 어렵다. 그래서 알바를 할 수 밖에 없어서 도서관에서 국가 근로를 했다. 그래야 밥이라도 먹고, 책이라도 살 수 있으니..
무엇보다 방학 때 열공을 하려면 100만원은 최소한 있어야한다... 무조건 모아야 했다.
국가 근로는 나라에서 인정한 가난한 아이들만 시켜주는 것이었다. 거기에 내가 포함된다니.. 한편으론 안타깝고 한편으론 감사했다.
중도 대출실에서 일하고, 공강때는 책을 꽂으면서 영어듣기를 하고 꾸준히 공부를 했다. 그래도 욕심이 생겼으니까.
6월쯤 되니 반수 성공해서 전액 장학금 받고 대학가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전자공학과 5366000원을 올 대출 받아 학교 들어와서 계속 빌릴 생각하니 겁이 났다.
19학점 정도 들은 것 같은데 어찌 1학기 끝나서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100만원을 모으지 못해서 7월 한 달 간은 알바를 할 수 밖에 없었다.
한 40만원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일을 하면서 공부를 했다. 그 때 처음으로 언어와 외국어 과탐을 다시폈다.
2학기때는 일을 할 수 없으니 8~11월까지 식비라도 해결할 돈을 미리 준비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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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달 너무 덥다.. 하지만 공부해야 한다.놀러가는 사람들. 피서 가는 사람들. 커플들 그냥 아대 거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부러웠다. 나 빼고 전부.
하지만 참고 공부해야한다. 모의고사도 없어서, 따로 자극이 돼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수특이라도 끝낼 생각을 하면서 공부했다. 9월 평가원을 목표로...
수학이 최대 약점이라 하루 4시간씩은 수학을 했다.
8월달 부터 완전히 공부할 수가 있었다.
이때는 주로 중도 2층이나 다람실에서 공부를 했다. 시원해서..
밥은 주로 아향에가서 해결했다. 그나마 가장 가깝고 다매만 먹다간 죽을 것 같으니까 ㅎㅎ
그리고 아향이 그나마 제일 맛있으니까.
그렇게 꾸준히 공부했다. 특별히 생각나는 게 없는 것보니까 잘 공부하며 보낸것 같다.
9월달이 돼었다. 아주대가 1주 빨리 개강했다. 그 덕분에 9월 평가원을 수업빠지고 볼 수 밖에 없었다.
.... 화요일이라서 화요일 수업은 어쩔 수 없이 빠졌다.
점수는 141 12아.... 수학을 그렇게 많이 했는데 아직도 4등급이라니.....
지식인에 ' 가형 4등급'을 검색해봤다...
나같은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이 사람들도 나처럼 하루에 4시간씩 하는데도 이런 것인가.... 내가 수학적 재능이 없는 것인가?
그리고 하나같이 답변은 이거였다. ' 수학 4등급은 개념이 부족하니 개념책이나 인강을 보세요. '
' 아. 나는 개념이 완벽하다 생각하고, 기출도 다 풀었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지식인은 역시 도움이 되지 않았고, 오르비에 올려봤자, 오르비에선 수학 4등급에겐 조언조차 해주지않았다...
그들이 상대하기엔 쪽팔렸을 테니까.
고민이 많아졌다.
무휴학 반수를 해야하는데 이대로라면 옮겨탈수 있는 대학은 있지도 않았고, 학점은 학점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날려버릴 수 있었다.
일주일동안 공부를 놓았다. 2달동안 그리 열심히 일하면서까지 공부를 했는데 '역시 안되는 건 안되는 건가' ......
하지만 나는 수학 공부시간을 늘렸다. 이렇게 된다면 언어와 외국어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대로 유지하면 4등급이 나올 것 이다.
언어랑 외국어가 2등급 나와도 되니, 수리야 2등급만 나왔으면 좋겠다 맘을 먹고. 수리에 6시간을 몰빵했다.
언어 1시간, 수학 6시간 외국어 1시간, 탐구 2시간 ,, 아니나 다를까. 언어 외국어 점수가 막떨어졌다.
9월 중순쯤 본 중앙 모의고사에선 3 3 2 22 가 나왔다. 충격이었다. 수학을 3등급을 처음 맛 보는 순간이었다.
아 2시간을 올리니 돼는구나... 정말 기뻐서 눈물이 났다. 근데 이점수는 원래 내점수보다 더 못 본 점수였다. 언어와 외국어가 이 정도로 떨어지다니..
겨우 한시간 줄였다고 점수가 이정도로 떨어지다니... 내 실력이 이렇게 중심이 없는 실력이었나... 내 능력에 대해서
한숨이 나오고 , 어찌할 줄은 몰랐다. 그 동안에도 2학기에 19학점을 소화하느라 너무 힘들고, 과제 레포트 하느라 죽을 것 같았다.
과제, 레포트 다 때려치고 싶지만 그렇다면 수능을 망쳤을때 돌아갈 곳 조차도 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학기에 대출도 못 받을 학점 나오면
학교도 못다니는 백수신세가 될 것이다.
최소한 학점 3.5는 찍어야 한다. 그래야 장학금 받는데도 지장없고, 대출이라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다짐했지만 나 스스로 부담이 되면서
이도저도 안되는 기분이 들었다. 수업갔다가 수능공부했다가 과제 했다가 레포트했다가 미칠 것 같았다.
그래서 수학 6시간은 다시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하루에 짬짬이 공부를 해서 5시간은 계속 유지를 하고 하루에 모의고사 2회씩
ebs 40문제 해서 100문제씩을 풀었다. 언어와 외국어는 1시간반으로 변경했다. 원래 내점수를 되찾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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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이 되었다. 너무 힘들었다. 중간고사 기간 직전에 모의고사 하나가 있었다. 그것을 보았다.
하루에 100문제씩 푼지 딱 한달쯤 되서 중앙 모의고사를 보게 된것이다.
3 1 2 22 ... 형편 없는 점수지만... 수학이 올랐다.. 엄청나게 올랐다... 아 희망이 생겼다.
잘하면 내가 원하던 의대나 한의대를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의대가 더 끌렸지만 쉬는 시간 틈틈이 송재관을 가서 공부하는 의대생들을 보며
자극을 보곤 했었다. 비록 그때까진 의대는 꿈도 못꿨지만)
장학금 받고 대학을 갈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생겼다.
일단 사설이지만 첨으로 보는 점수 아닌가. 정말 기뻤다. 언어와 외국어는 1을 찾아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수학 처음보는 점수 였던 것이다.
뽀록이든 아니든 점수 자체가.
열심히 해야겠다.
10월 중간고사 일주일동안은 수능 공부를 놓았다. 어쩔 수 없었다...
정말 포기해버리고 싶었지만, 그렇다면 돌아올 곳이 없었다... 화학 물리 영어 교양과목들 엄청 힘들었다...
누구에겐 하소연하고 싶지만 할 사람도 없었다. 그럴때일 수록 나를 이렇게 만든 수학을 원망하며 더 공부를 했다.
D-10 이 됐다.
이쯤되니 여름 방학때 모아둔 돈이 다 떨어졌다. 100만원가량으로 시작한 내 여정도 마무리가 보이고 있었다.
돈 5만원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시중 모의고사들을 풀고 싶은데 살돈이 없었다. 그렇다면 밥을 굶어야했다.
어쩔 수 없었다. 하루에 두 끼먹었지만 점심겸 저녁으로 한 끼만 먹기로 하고, 남는 돈으로 시중 모의고사를 2개 샀다.
그것으로 내 마지막 수능 대비를 했다. 11월 마지막 사설 모의를 보고 싶었지만 그 돈으로 시중 모의고사 2개와 파이널 수학을 택했다.
그리고 차라리 ebs 책을 더 반복하며 수능을 대비했다.
시중 모의고사 10회와 파이널 9회를 풀었는데 수학이 틀린것이 20개가 되지 않았다. 드디어 빛을 보는 것인가 라고 근자감이 들었다.
하지만 언어랑 외국어는 ebs는 많이 봤지만 그밖에 준비한 것이 따로 없어서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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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날이 되었다. 수능 날 딱 3000원 이 남았다.
도시락을 할머니께 싸달라고 할수도 없고, 수능준비한줄은 당연히 모르셨다.
나혼자 준비해야하는데, 당연히 초조해 죽겠는데 도시락을 직접쌀 수는 없고
편의점가서 삼각김밥1개와 라면을 하나 사가서 먹었다.
효원고 2학년 교실에서 라면을 먹을줄이야. 그것도 수능날에.. 쓸쓸하고, 주변의 시선이 일부는 날카로웠고 일부는 불쌍히 봤지만
개의치 않았다. 정말 울것같았지만 꾸엑꾸엑 삼켰다.
그거라도 먹어야 시험을 치룰수 있었기에 먹을 수 밖에없었다. 신라면과 참치 마요네즈...
뜨거운 물이 없었다... 시험 감독관실에 가서 뜨거운물에 물을 받아먹는데 너무 초라해보여서 싫었지만 그것도 잠시.
점심시간을 잘 보내고 나머지 시험을 치뤘다.
시험이 끝났다.
언어가 쉬웠다.
수학도 비교적 쉬웠다.
영어는 어려웠다.
집에 와서 영어부터 채점을 했다... 망했다.... 90점이다.... 2등급이었다..;;
그토록 영어도 많이 준비했건만... 엄청나게 아쉬웠다.
그 다음에 수학을 채점을 했다. 3점짜리 하나를 틀렸다. 97점이다.. 1등급이다.
역시 공부하면 되는구나. 기뻤다. 눈물이 흘렀다.
언어를 채점했다. 100점이었다. 아리송한 3점짜리를 맞혔다. 휴우....
과탐은 지학을 다맞았지만 생2가 너무 어려워서 1등급컷이 떴다... 젠장..
하지만 1점이라도 컷이 오르는 순간 등급이 변해서 나중에 장학금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 굉장히 불안했다.
결과적으로 기뻤다. 최소한 아주대 전액장학금은 받을 수 있던 점수였기 때문이었다.
이제 더이상 학비부담은 안해도 될것같았고, 대출을 안받아도 될것같았다.
솔직히 지방대 의대갈 성적은 됐던것 같지만 의대갈 형편이 당연히 안되고
이성적으로 의대 장학금은 턱도 없었다. 그리고 당시엔 의대가 안 될줄 알았다.
그리고 집앞이 아주대라 아주대 의대를 쓰고싶었지만 너무 부족한 점수였다.
연대와 한양대, 대전대 한의대를 썼다.
연대와 한양대, 대전대 다 붙고, 결국 연대를 택했다.
연대 장학금으로 붙었을때 1시간은 울었다. 행복했다.
하지만 대전대를 가고싶었다. 하지만 또 궁극적으론 의대가 가고싶었다. 특히 정형외과.
내가 할머니와 사는데 할머니들이 말씀하시기에 근처에 좋은 정형외과가 없고 가격은 굉장히 비싸 굉장히 안타까워 하시고
노인정 할머님들 허리, 다리 아파도 참고 병원도 못 가신 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그덕분에 동기가 생겼고, 내가 의원 지어서 할머니들은
무료로 봐드리는게 내 소원이었다.
하지만 점수가 모자랐다.
그래서 일단 연대로 왔다.
다행히 지금은 장학금을 받게 되어서 부담이 없다. 정말 행운이다... 항상 감사하며 지낸다.
잠시 여기를 들린거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아주대 의대를 가고싶다.
작년 이상의 노력을 해야겠다.
3월 개강한 이후로 아주대의대가 머리속에서 떠난 적이없다...
슬프고도 한편으론 고맙다. 의지를 불태워주니.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까먹고, 11월쯤엔 완전히 까먹을 것 같아서 글을 미리쓴다.
원래 올 2월쯤 인증이랑 함께 '무휴학 반수 공대생 편' 이란 글을 썼지만 누군가 신고를 해서 지운것 같다.
다시 한번 쓰지만 반수를 하는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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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2011년 11월 10일 2012 수능.
수학 찍은 것만 잘 받으면 2등급 받을 것 같았다. 하지만.. 찍은게 맞을리 없었다.
점수가 망했다. 341 11 받았다. 영어와 과탐은 만점이었다.
너무 안타까웠다.
내가 생각하던 곳은 참으로 갈 수 없었고 오르비에서는 집앞 아주대 갈 수 있을까라고 물었지만
이 점수로 아주대도 못 갈것이라 겁을 주었다.
아주대 전자공학과를 질러 보자 라고 마음을 먹고 질렀다. 하지만 결과는 최초합....
경희대 전자전파, 아주대 전자, 아주대 기계를 다 붙고 아주대 전자를 선택했다. 기계를 갈껄 약간 후회가 됐다. GM 이랑 계약한줄 모르고...
수리 4등급이라도 영어를 잘봐서 합격한 것 같다. 어쨌든 행복했다. 대학도 못 갈 줄 알았는데
그래도 공대라면 알아주는 아주대에 합격했으니... 근데 수학이 너무 아쉬웠다.
언어는 원래 미끄러졌지만 수리는 항상 3~4를 진동이라 수학만 잘하면 더 좋은 곳을 갈수 있었다.
수학을 엄청나게 해보자 독하게 생각을 하고 1월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오티를 가고 게임을 하고 나락으로 빠지며 그냥 아주대 다녀야 겠다 맘먹었다.
오티를 저기 어디 강원도 어디를 갔는데 바닷가로 기억을 한다. 공대 전체가 아마 다같이 갔을 것이다.
12학번이면 다들 기억할 것이다. 거기서 무슨 티도 줬는데 집에서 입었다. 그리고 지금은 오그라들지만 방돌이라고
동아리 소학회들이 방을 돌면서 술먹는 이상한 관습적인것을 했다. ㅎㅎ 그래도 그때까진 즐거웠다.
3월이 되어서 나름 동아리 2개도 들고 축구 소학회도 들면서 신나게 학교 생활을 했다.
근데 교재를 사러 갔을때, 학교 앞 교문서적에서 수능특강이란 책을 보게 된 순간.. 수학 4등급이 너무 아까웠다...
그리고 자존심이 상했다. 4등급이라니...
대학을 바꾸는건 둘째치고 4등급이라는 것이 용서가 안된다. 1년 내내 했는데 4등급이란 것이...
다시 한번 도전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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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부터 수학만 팠다. 계속 수학만 했다. 중도에서도 율람실에서도 다람실에서도.
물론 1학기때는 실험과목 과제도 많아서 꽤나 힘들었다. 그래도 틈틈이 공부를 했다. 많이 했지만 책 2권정도 밖에 못했다. 그것도 수학책만...
우리 집 형편이 매우 어렵다. 그래서 알바를 할 수 밖에 없어서 도서관에서 국가 근로를 했다. 그래야 밥이라도 먹고, 책이라도 살 수 있으니..
무엇보다 방학 때 열공을 하려면 100만원은 최소한 있어야한다... 무조건 모아야 했다.
국가 근로는 나라에서 인정한 가난한 아이들만 시켜주는 것이었다. 거기에 내가 포함된다니.. 한편으론 안타깝고 한편으론 감사했다.
중도 대출실에서 일하고, 공강때는 책을 꽂으면서 영어듣기를 하고 꾸준히 공부를 했다. 그래도 욕심이 생겼으니까.
6월쯤 되니 반수 성공해서 전액 장학금 받고 대학가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전자공학과 5366000원을 올 대출 받아 학교 들어와서 계속 빌릴 생각하니 겁이 났다.
19학점 정도 들은 것 같은데 어찌 1학기 끝나서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100만원을 모으지 못해서 7월 한 달 간은 알바를 할 수 밖에 없었다.
한 40만원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일을 하면서 공부를 했다. 그 때 처음으로 언어와 외국어 과탐을 다시폈다.
2학기때는 일을 할 수 없으니 8~11월까지 식비라도 해결할 돈을 미리 준비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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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달 너무 덥다.. 하지만 공부해야 한다.놀러가는 사람들. 피서 가는 사람들. 커플들 그냥 아대 거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부러웠다. 나 빼고 전부.
하지만 참고 공부해야한다. 모의고사도 없어서, 따로 자극이 돼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수특이라도 끝낼 생각을 하면서 공부했다. 9월 평가원을 목표로...
수학이 최대 약점이라 하루 4시간씩은 수학을 했다.
8월달 부터 완전히 공부할 수가 있었다.
이때는 주로 중도 2층이나 다람실에서 공부를 했다. 시원해서..
밥은 주로 아향에가서 해결했다. 그나마 가장 가깝고 다매만 먹다간 죽을 것 같으니까 ㅎㅎ
그리고 아향이 그나마 제일 맛있으니까.
그렇게 꾸준히 공부했다. 특별히 생각나는 게 없는 것보니까 잘 공부하며 보낸것 같다.
9월달이 돼었다. 아주대가 1주 빨리 개강했다. 그 덕분에 9월 평가원을 수업빠지고 볼 수 밖에 없었다.
.... 화요일이라서 화요일 수업은 어쩔 수 없이 빠졌다.
점수는 141 12아.... 수학을 그렇게 많이 했는데 아직도 4등급이라니.....
지식인에 ' 가형 4등급'을 검색해봤다...
나같은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이 사람들도 나처럼 하루에 4시간씩 하는데도 이런 것인가.... 내가 수학적 재능이 없는 것인가?
그리고 하나같이 답변은 이거였다. ' 수학 4등급은 개념이 부족하니 개념책이나 인강을 보세요. '
' 아. 나는 개념이 완벽하다 생각하고, 기출도 다 풀었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지식인은 역시 도움이 되지 않았고, 오르비에 올려봤자, 오르비에선 수학 4등급에겐 조언조차 해주지않았다...
그들이 상대하기엔 쪽팔렸을 테니까.
고민이 많아졌다.
무휴학 반수를 해야하는데 이대로라면 옮겨탈수 있는 대학은 있지도 않았고, 학점은 학점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날려버릴 수 있었다.
일주일동안 공부를 놓았다. 2달동안 그리 열심히 일하면서까지 공부를 했는데 '역시 안되는 건 안되는 건가' ......
하지만 나는 수학 공부시간을 늘렸다. 이렇게 된다면 언어와 외국어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대로 유지하면 4등급이 나올 것 이다.
언어랑 외국어가 2등급 나와도 되니, 수리야 2등급만 나왔으면 좋겠다 맘을 먹고. 수리에 6시간을 몰빵했다.
언어 1시간, 수학 6시간 외국어 1시간, 탐구 2시간 ,, 아니나 다를까. 언어 외국어 점수가 막떨어졌다.
9월 중순쯤 본 중앙 모의고사에선 3 3 2 22 가 나왔다. 충격이었다. 수학을 3등급을 처음 맛 보는 순간이었다.
아 2시간을 올리니 돼는구나... 정말 기뻐서 눈물이 났다. 근데 이점수는 원래 내점수보다 더 못 본 점수였다. 언어와 외국어가 이 정도로 떨어지다니..
겨우 한시간 줄였다고 점수가 이정도로 떨어지다니... 내 실력이 이렇게 중심이 없는 실력이었나... 내 능력에 대해서
한숨이 나오고 , 어찌할 줄은 몰랐다. 그 동안에도 2학기에 19학점을 소화하느라 너무 힘들고, 과제 레포트 하느라 죽을 것 같았다.
과제, 레포트 다 때려치고 싶지만 그렇다면 수능을 망쳤을때 돌아갈 곳 조차도 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학기에 대출도 못 받을 학점 나오면
학교도 못다니는 백수신세가 될 것이다.
최소한 학점 3.5는 찍어야 한다. 그래야 장학금 받는데도 지장없고, 대출이라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다짐했지만 나 스스로 부담이 되면서
이도저도 안되는 기분이 들었다. 수업갔다가 수능공부했다가 과제 했다가 레포트했다가 미칠 것 같았다.
그래서 수학 6시간은 다시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하루에 짬짬이 공부를 해서 5시간은 계속 유지를 하고 하루에 모의고사 2회씩
ebs 40문제 해서 100문제씩을 풀었다. 언어와 외국어는 1시간반으로 변경했다. 원래 내점수를 되찾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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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이 되었다. 너무 힘들었다. 중간고사 기간 직전에 모의고사 하나가 있었다. 그것을 보았다.
하루에 100문제씩 푼지 딱 한달쯤 되서 중앙 모의고사를 보게 된것이다.
3 1 2 22 ... 형편 없는 점수지만... 수학이 올랐다.. 엄청나게 올랐다... 아 희망이 생겼다.
잘하면 내가 원하던 의대나 한의대를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의대가 더 끌렸지만 쉬는 시간 틈틈이 송재관을 가서 공부하는 의대생들을 보며
자극을 보곤 했었다. 비록 그때까진 의대는 꿈도 못꿨지만)
장학금 받고 대학을 갈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생겼다.
일단 사설이지만 첨으로 보는 점수 아닌가. 정말 기뻤다. 언어와 외국어는 1을 찾아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수학 처음보는 점수 였던 것이다.
뽀록이든 아니든 점수 자체가.
열심히 해야겠다.
10월 중간고사 일주일동안은 수능 공부를 놓았다. 어쩔 수 없었다...
정말 포기해버리고 싶었지만, 그렇다면 돌아올 곳이 없었다... 화학 물리 영어 교양과목들 엄청 힘들었다...
누구에겐 하소연하고 싶지만 할 사람도 없었다. 그럴때일 수록 나를 이렇게 만든 수학을 원망하며 더 공부를 했다.
D-10 이 됐다.
이쯤되니 여름 방학때 모아둔 돈이 다 떨어졌다. 100만원가량으로 시작한 내 여정도 마무리가 보이고 있었다.
돈 5만원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시중 모의고사들을 풀고 싶은데 살돈이 없었다. 그렇다면 밥을 굶어야했다.
어쩔 수 없었다. 하루에 두 끼먹었지만 점심겸 저녁으로 한 끼만 먹기로 하고, 남는 돈으로 시중 모의고사를 2개 샀다.
그것으로 내 마지막 수능 대비를 했다. 11월 마지막 사설 모의를 보고 싶었지만 그 돈으로 시중 모의고사 2개와 파이널 수학을 택했다.
그리고 차라리 ebs 책을 더 반복하며 수능을 대비했다.
시중 모의고사 10회와 파이널 9회를 풀었는데 수학이 틀린것이 20개가 되지 않았다. 드디어 빛을 보는 것인가 라고 근자감이 들었다.
하지만 언어랑 외국어는 ebs는 많이 봤지만 그밖에 준비한 것이 따로 없어서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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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날이 되었다. 수능 날 딱 3000원 이 남았다.
도시락을 할머니께 싸달라고 할수도 없고, 수능준비한줄은 당연히 모르셨다.
나혼자 준비해야하는데, 당연히 초조해 죽겠는데 도시락을 직접쌀 수는 없고
편의점가서 삼각김밥1개와 라면을 하나 사가서 먹었다.
효원고 2학년 교실에서 라면을 먹을줄이야. 그것도 수능날에.. 쓸쓸하고, 주변의 시선이 일부는 날카로웠고 일부는 불쌍히 봤지만
개의치 않았다. 정말 울것같았지만 꾸엑꾸엑 삼켰다.
그거라도 먹어야 시험을 치룰수 있었기에 먹을 수 밖에없었다. 신라면과 참치 마요네즈...
뜨거운 물이 없었다... 시험 감독관실에 가서 뜨거운물에 물을 받아먹는데 너무 초라해보여서 싫었지만 그것도 잠시.
점심시간을 잘 보내고 나머지 시험을 치뤘다.
시험이 끝났다.
언어가 쉬웠다.
수학도 비교적 쉬웠다.
영어는 어려웠다.
집에 와서 영어부터 채점을 했다... 망했다.... 90점이다.... 2등급이었다..;;
그토록 영어도 많이 준비했건만... 엄청나게 아쉬웠다.
그 다음에 수학을 채점을 했다. 3점짜리 하나를 틀렸다. 97점이다.. 1등급이다.
역시 공부하면 되는구나. 기뻤다. 눈물이 흘렀다.
언어를 채점했다. 100점이었다. 아리송한 3점짜리를 맞혔다. 휴우....
과탐은 지학을 다맞았지만 생2가 너무 어려워서 1등급컷이 떴다... 젠장..
하지만 1점이라도 컷이 오르는 순간 등급이 변해서 나중에 장학금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 굉장히 불안했다.
결과적으로 기뻤다. 최소한 아주대 전액장학금은 받을 수 있던 점수였기 때문이었다.
이제 더이상 학비부담은 안해도 될것같았고, 대출을 안받아도 될것같았다.
솔직히 지방대 의대갈 성적은 됐던것 같지만 의대갈 형편이 당연히 안되고
이성적으로 의대 장학금은 턱도 없었다. 그리고 당시엔 의대가 안 될줄 알았다.
그리고 집앞이 아주대라 아주대 의대를 쓰고싶었지만 너무 부족한 점수였다.
연대와 한양대, 대전대 한의대를 썼다.
연대와 한양대, 대전대 다 붙고, 결국 연대를 택했다.
연대 장학금으로 붙었을때 1시간은 울었다. 행복했다.
하지만 대전대를 가고싶었다. 하지만 또 궁극적으론 의대가 가고싶었다. 특히 정형외과.
내가 할머니와 사는데 할머니들이 말씀하시기에 근처에 좋은 정형외과가 없고 가격은 굉장히 비싸 굉장히 안타까워 하시고
노인정 할머님들 허리, 다리 아파도 참고 병원도 못 가신 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그덕분에 동기가 생겼고, 내가 의원 지어서 할머니들은
무료로 봐드리는게 내 소원이었다.
하지만 점수가 모자랐다.
그래서 일단 연대로 왔다.
다행히 지금은 장학금을 받게 되어서 부담이 없다. 정말 행운이다... 항상 감사하며 지낸다.
잠시 여기를 들린거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아주대 의대를 가고싶다.
작년 이상의 노력을 해야겠다.
3월 개강한 이후로 아주대의대가 머리속에서 떠난 적이없다...
슬프고도 한편으론 고맙다. 의지를 불태워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