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외투를 걸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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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외투를 걸치고..

익명_NjQuMzIu 0 989 0

 

대학교 졸업 후 당장은 마땅한 일이 없었다.

그 때즈음 형부가 지인과 동업을 하면서부터 형편이 많이 어려워졌다는 걸

언니를 통해 알게 되었다. 

꽤나 괜찮은 아파트에 살았던 언니네가

재개발지역으로 보이는 듯한 오래되고 낡았던

동네의 한 주택에서 살게 되었지.

 

언니네가 맞벌이를 시작하게 되었고

조카를 당장 어린이집에 맡아둘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언니의 부탁으로 조카를 한달정도를 보게 되었어.

언니집은 마당 몇 평 정도 조그맣게 있는 집으로

생각했던 것보단 괜찮았어.

 

갓 돌 된 아기를 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힘든 것 중 하나가 그때 나는 흡연자였고

조카를 돌봄으로 인해 담배를 마음대로 필 수 없었어.

많이 폈던건 아니었지만 담배뿐만이 아니라 

애기를 본다는 것이 내가 자유롭게 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답답함에 

적응을 하기 전엔 더욱 힘들었다.

 

어느새 패턴이 잡히면서는 아기가 낮잠에 들기 시작해서 

한잠 빠졌단 생각이 들면 마당에 나와 담배를 태운 후

얼른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었지.

내가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여건이 벌로 없었다. 

언니가 일을 쉬는 일요일날이 아니라면 

주중에는 아기 낮잠자는 시간과

언니가 퇴근하고 돌아온 밤 정도.

 

아기의 짧은 낮잠시간과 

뭘 할 수도 없는 늦은 밤, 

여기 동네는 번화가로 가려면

버스 두 정거장거리였기에

늦은 밤에 밖을 나가 어디 돌아다닐 만한 곳이 없었다.

비좁게 여러갈래로 뻣은 어두컴컴한 골목길을 비추는 가로등만 볼 수 있었지.

내가 할 수 있는건 역시 인근 슈퍼에 가서 맥주 한캔을 사먹는 일.

내게 담배와 술이 스트레스 해소를 푸는 주된 도구가 될 줄 생각치 못한 일이었다.

그만큼 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보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래야하는가로

언니와 티격태격 싸운 적도 있었다.

조카의 똘망똘망한 눈을 보면 죄책감이 들기도 했고

괜히 미안해지면서 마음이 약해졌어.

 

이른 아침 언니네가 출근하면

내가 바통을 이어받아 조카를 봐야했고

조카가 일어나기 전에 이유식 만들었다.

아이가 일어나면 아침을 먹이고 같이 놀다가 간식먹이고..

만들어둔 이유식이 있다면 점심을 먹였는데

그게아닌 상황이면 점심을 만들 시간이 필요했고

조금이라도 나와 떨어져있기 싫어하며 보채는 조카를 매달고 요리를 했다.

 

그리고 낮잠을 재우고... 

아이가 낮잠 자는 시간동안

쌓여있는 빨래도 돌리고 널어야했어.

어지럽힌 집안정리와 설거지..

혹여라도 아이가 깰까 싶어

마치 살얼음 위에 있는 듯 조심조심해야했고

아이의 울움소리가 못 들을까 신경을 써야했지.

계속 촉각을 곤두썼던지 피곤이 말이 아니었다.

 

아이가 낮잠에서 깨면 간식을 먹이고

또 다시 놀다가 저녁을 먹이고..

더운 여름날이라 매일매일 애 목욕에

그리고 밤잠 재우는 것까지.... 다 마무리가 되어야

퇴근한 언니에게 바통을 건네줄 수 있었어.

촉각은 늘 곤두세워진 도토리 챗바퀴 구르는 일상이었다.

 

늦은 밤이 되서야 홀로 자유를 찾을 수 있었고

그것은 고작 슈퍼에 가서 맥주한 캔과 담배를 태우는 일..

지쳤던 마음에 혼자 길을 다니기에는 늦은 시각이란 생각은 안중에 없었어.

 

 

 

 

조카 보는 일이 잠깐일꺼라 생각했지만

시간은 생각보다 많이 길어졌다.

 

어느새 적응이 된 듯 했지만

그건 내가 해야할 일에 대한 것이었지.. 능숙한 정도..

내 마음은 피폐해져가는 기분이었어.

여기에 왜 있는지..무엇을 위해 이렇게 하는건지.. 하다가도

조카를 보면 또다시 안스러워서 그 생각은 접어두었고

이러저러한 만감이 교차되는 건 적응이 되지 않았다.

 

 

 

 

어느 날.. 난 여느때처럼

아이가 낮잠에 든 걸 확인하고

조심스레 담배를 피러 마당을 향했다.

 

안그래도 흐르는 땀때문에 하루에 두번씩은 옷을 갈아입어야 했는데

흡연 한번으로 멀쩡한 옷을 벗어 세탁기에 던져지는 일은

여러모로 번거로운 일이라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부터 흡연을 하기 전에 옷을 현관 앞에 벗어두고

입지 않을 것 같은 장롱 깊은 곳 언니의 외투만 걸친채 

마당에 나와 담배를 태우기 시작했어.

물론 외투 속은 알몸이었지.

 

외투를 걸친건

현관문을 열면 서너계단을 내려오기까지는

외부에서 시야에 띌 수 있는 각도가 나와 

혹시나 노출될 수 있을까 염려해서였다.

그늘진 대문쪽 벽으로 와서 담배를 태웠는데

두꺼웠던 외투로 땀이 날 정도로 더웠고... 

난 마당에서 외투를 벗기 시작했다.

 

땀이 날 정도로 더워서 그 외투마저 벗은 건 아니었다...

대문쪽에 붙을수록 사각지대가 생겨

외부에서는 당연히 보이지 않아 그런 안도감에

그냥 한번 외투를 벗어보기 시작한게 화근..

 

바람 한점 불지 않은 무더운 날씨..

외투를 벗고 공기에 직접적으로 

몸을 드러내어도 땀이 흐르는 그런 날씨

 

아무런 장애없이 여름의 후덥지근한 공기가 

내 몸을 칭칭 감싸고 있었던 느낌.

그렇게 몸을 완전히 드러내어 있으면 안되는 장소에서

느껴졌던 정체모를 해방감과 일탈감.

매일 챗바퀴 도는 생활로

지치고 따분함이 가득했던 내 머릿 속에

마치 어떤 강한 충격파가 쾅하고 내리치게 되면서

시들시들해있던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미친듯이 활기를 띄어 꿈틀대는 듯 했다.

 

나는 이 느낌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언니에게 바통을 주고 난 밤에도

맥주한캔을 하고나면

낮에 느꼈던 그 여운이 쑤욱 올라왔고... 

스산한 동네 골목길을 배회했다.

 

저녁시간이 넘으면 인적이 뜸해지며

밤이 되면 사람 한명 보기 어려웠다.

그리고 굽이굽이치는 골목길...

가로등이 밝히는 공간의 사각지대에서

나는 몸을 드러내놓기 시작했다.

 

아슬아슬함이라고 하기엔

매우 적막해서 안정적인 상황이었고

누구나가 다니는 이 길에서 

몸을 일부분 드러내놓은 이 상황에서

느끼지는 짜릿함이 신선한 충격이었어.

 

매료를 넘어 마치 중독된 것 마냥

그 행위의 수위가 깊어졌고

결국 신발을 제외하곤

내 몸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고 있지 않았지.

걸치고 있던 걸 몸으로부터 하나 둘.. 떼어내면서 느꼈던 희열은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파묻어버릴만큼 강력했어.

 

하루라도 하지않으면 

몸이 근질근질 거리는 느낌이었다.

점점 상상을 하는 수위가 저질적으로 변해가는 내 모습에 자괴감이 들기 시작했어.

내가 무슨 짓을 하는건지 

혹여라도 가족이 알게되면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

고민을 하면서도 

그 행동은 멈추지 못했고

반복 또다시 반복..

 

언니네 집의 생활이 끝나고

다시 나의 일상으로 돌아오면서는 

자연스레 그 일이 떠오르지 않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그 일이 떠오르더라도 

언니네 집에서 있을때만큼의 충동이 아니라 

한두번 넘어가면서

이후부터 그런 행위는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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